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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의 대표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트 프리드리히 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독일에서 출생해 동시대에 활동한 음악가로 현재는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대작곡가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두 작곡가는 공통점이 참 많아 보이지만 음악적인 성격과 활동에 있어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헨델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했고 부와 명예를 위해 대부분 영국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에 반해 바흐는 한평생 독일을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고 가정적이며 음악 공부만 하는 학구파 작곡가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나라, 같은 직업, 같은 나이였지만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흐와 헨델은 눈 질환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들을 진료한 의사가 같은 인물이었고 사망의 원인도 눈 수술이 악화되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도 바흐와 헨델이 같습니다.
***게오르트 프리드리히 헨델***
1685년 독일 할레에서 태어난 헨델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지만 음악에 흥미가 있어 법과 음악을 동시에 공부하게 됩니다.
처녀작인 오페라 알미라를 성공을 거두자 자본격적으로 음악의 길로 들어섭니다.
하노버 선제후 궁정 악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우연히 떠난 영국에서 그의 인생이 터닝포인트가 되ㅐ는 기회를 맛보게 됩니다.
당시 영국은 내세울만한 음악가가 없었고 헨델은 그 틈을 이용해 '리처드 1세'를 작곡해 대성공을 거둡니다.
영국에서의 성공은 헨델에게 부와 명예, 그리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총애도 얻게 됩니다.
헨델의 작품에는 메시아,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오페라 리날도, 오페라 세르세, 콘체르토 그로소 제1번~12번, 바이올린 소나타 등 다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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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바흐는 헨델과 같은 해인 1865년 독일 암브로지우스에서 출생합니다.
바흐의 초상화를 보면 음악가보다는 고지식한 교육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 무려 50여 명의 음악가가 탄생한 음악가 집안입니다.
바흐는 막내로 태어나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맏형의 도움으로 음악교육을 받고 에른스트의 궁정에 바이올리니스트를 거쳐 아른슈타트 교회 오르가니스트와 지휘자로 발탁되면서 음악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후 1708년 바이나 르 궁정 악사, 쾨텐, 라이프치이 등의 지역을 거치면서 음악활동을 이어 나갔고 틈틈이 교회 음악들을 탄생시킵니다.
바흐는 65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1000여 곡의 곡들을 남겼습니다.
바흐의 삶은 철저한 가족 중심의 가정적이고 부인과 아이들을 잘 보살폈습니다.
그는 갑작스럽게 첫째 부인과 사별을 하고 둘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 사이에서 무려 20명의 아이들을 두었습니다.
부인과 20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는 일에 아주 적극적이어서 평생 일을 손에 놓지 않았지만 빠듯한 살림살이 걱정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마테 수난곡, 토카타와 푸가, 다수의 칸타타, G선상의 아리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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