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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로시니의 마지막 오페라 "윌리엄 텔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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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윌리엄 텔'***

'윌리엄 텔'은 잘 알려진 스토리입니다.

4막의 무대로 꾸며진 오페라는 13세기경 스위스의 루체른 호숫가에 있는 윌리엄의 집 앞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오페라 속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루체른에서 살고 있던 윌리엄 텔은 활을 잘 쏘는 명궁이었습니다.

그 소문은 오스트리아에도 들어갔고 어느 날 윌리엄의 집에 오스트리아 군인들이 들어와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윌리엄의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활로 쏘라는 것!

유명한 이 장면은 오페라 속에서도 핵심 포인트이며 클라이맥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리아 '움직이지 마라'는 주인공의 강인함과 부성애를 탁월하게 조화시켜야 하고 또 윌리엄이 화살을 사과에 명중시켰을 때 관객들은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합니다.

오페라 '윌리엄 텔'은 전체적으로 쾌활함과 비장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입니다.

전체적인 오페라의 분위기는 바그너와 베르디의 색채도 가미되었는데요, 주옥같은 벨칸토 아리아와 중창이 가득하면서도 로시니의 음악적 분위기가 잘 살려진 독특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거운 듯하다가도 가볍고 유연한 멜로디는 명암의 대비가 뚜렷해 마치 한 작품 안에 베르디와 바그너, 로시니를 함께 만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스위스 루체른
루체른 호수

***윌리엄 텔 서곡***

윌리엄 텔 서곡은 '새벽', '태풍'  '고요' 그리고 '스위스 군대의 행진곡'의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서곡은 짜임새가 좋아 베를리오즈는 "4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교향곡"이라고 평가하기도 있습니다.

서곡 전체가 매우 묘사적이어서 마치 극 속에 멜로디를 이어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오페라의 아리아에는 같은 리듬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서곡의 4 부분 중에는 '스위스 군대의 행진곡'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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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키노 로시니***

조아키노 로시니는 1800년대 오페라계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음악가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시골 거리인 페자로에서 트럼펫과 호른의 명연주자인 음악가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로시니는 평생 39개나 되는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그중 '윌리엄 텔'은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나이 38세였습니다.

로시니는 주로 벨칸토 창법을 응용한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규모가 크고 진지한 대작들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주로 성악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의 오페라는 화려하고 풍성한 연주를 추가해 청중들의 색다른 음악을 선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시니의 트레센도'가 있는데 로시니만의 독특한 음악적 성격으로 느리고 조용하게 시작한 연주가 점점 높고 크게 몰아치는 기법으로 관객들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데에는 특효였습니다.

또, 벨칸토 창법*도 로시니를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당시의 벨칸토 창법은 사라질 뻔 하지만 그런 점이 못내 아쉬웠던 그는 모든 오페라에 벨칸토 창법을 적절하게 사용해 벨칸토 오페라의 최고 작곡가로 불리게 됩니다.

*벨칸토(bel canto)-18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성립된 창법.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미성을 내는데 촛점을 맞춘 발성법.

로시니는 운명을 달리한 38세까지 해마다 2편의 오페라를 쓸 만큼 작곡하는 시간이 짧은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세비야의 이발사', '도둑 까치', '빌헬름 텔' 등  다수가 있고 특히, 마지막 오페라 '빌헬름 텔'은 인색한 파리의 평론가들에게 조차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호평을 증명하듯 오페라 '빌헬름 텔'은 1829년 초연 후 1868년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500회째 공연을 달성했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텔 포스터
윌리엄 텔 포스터

***로시니의 사생활 엿보기***

일 년에 2편의 오페라를 쓸 만큼 다작을 한 로시니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으르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부분의 작곡을 침대에서 했고 악보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지면 줍는 것이 귀찮아 새로운 종이에 다시 적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공연을 앞두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늑장을 부리는 통에 극장주는 로시니를 가두는 해프닝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이것은 풍문으로만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실제 로시니는 미식가이자 대식가이기도 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요리와 요리책까지 낼 정도로 먹는 걸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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