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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크로이처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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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1802~4년에 걸쳐 작곡되었고 크로이처라는 부제가 있어 '크로이처 소나타'라 불리기도 합니다.

줄여서 '크로이처'라고도 합니다.

베토벤이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베토벤답고 유명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바이올린 곡으로 이름나기도 했습니다.

'크로이처'라는 부제는 당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의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하며 붙여진 부제이지만 당사자는 이곡을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 소나타이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경쟁하듯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듀오 소나타의 견해로 보기도 합니다.

크로이처 소나타 초판본

***바이올린 소나타 9번과 브리지타워***

베토벤은 원래 이 소나타를 바이올리니스트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하려고 했습니다.

폴란드와 서아프리카계의 혼혈로 태어난 영국 출신 브리지타워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며 유럽 음악의 메카, 빈으로 갑니다.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퍼포먼스가 더해진 그의 연주는 빈의 여성들 마음을 사로잡아 공연장은 항상 북새통이었고 그의 유명세는 순식간에 퍼집니다.

배토벤도 그의 종재를 알게 되고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브리지타워와 함께 초연을 하기로 합니다.

인기스타였던 브리지타워가 연주하는 소나타 초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객이 몰렸고 그의 연주는 소문대로였습니다.

바이올린 연주가 얼마나 훌륭했으면 표정 없기로 유명한 베토벤이 무대로 뛰쳐 올라가 포옹을 할 정도였습니다.

초연을 대박을 이끌어 준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의 연주한 브리지타워에게 베토벤은 무대 위에서 '괴짜 혼혈을 위한 소나타'라는 말과 함께 그에게 헌정합니다.

이때까지는 두 사람의 관계가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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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치고 뒤풀이에 간 베토벤과 브리지타워는 서로 축하하며 취하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술에 만취한 브리지타워는 빈에서 만난 여성들과의 은밀한 사생활을 공개적으로 쏟아내었고 베토벤은 여러 차례 말렸지만 그의 만행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베토벤은 그의 인성에 실망을 했고 그에게 헌정한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취소합니다.

베토벤이 화를 낸 이유는 브리지타워가 말한 여인 중 그가 짝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당황한 브리지타워는 사과했지만 베토벤은 단호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이 곡은 당신이 아니라 유럽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의 거장 '크로이처'에게 헌정하겠소"라고 말하며 브리지타워와는 다시는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이올린 이미지

***이후 이야기***

베토벤이 사망하고 40년 후 베토벤의 일대기를 연구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 '크로이처 소나타'에 대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브리지타워에 관한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그는 당시 영국 남부에서 살고 있다는 정보까지 입수하고 인터뷰를 위해 그를 찾아갑니다.

나이 든 브리지타워는 초라한 모습으로 가난한 동네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브리지타워는 크레이처 소나타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바이올린 소나타의 헌정을 그가 철회했고 이후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어요.

그날의 말을 너무 후회스럽지만 바이올린 소나타만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 소나타는 크로이처 소나타가 아닌 브리지타워의 소나타여야만 해요.

크로이처라는 이름을 지우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소"

한편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헌정받은 크로이처는 이 작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다른 연주자와 초연이 된 곡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바이올린 기교가 난해해 연주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베토벤의 헌정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크로이처는 헌정을 거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로이처 소나타'로 불리고 있습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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