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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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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습니다.

지금은 멘델스존과 브람스와 함께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포함된 명곡이 되었지만 처음 협주곡이 발표되었을 때에는 대중들의 냉대와 홀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유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이었습니다.

당시 음악 평론가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설어 신선하다는 평가 대신 비판이 우선이었습니다.

베토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을 하기로 한 날 아침까지도 완성을 하지 못했습니다.

연습은커녕 리허설도 할 시간도 없이 부랴부랴 서둘러 초연은 이루어졌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성공이었지만 이후 평론가들은 작품성은 인정하지만 안정감이 부족하고 멜로디의 흐름이 깨진다는 이유로 비관적인 평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예전의 곡들과는 분명 다른 면들이 많습니다.

당시 바이올린 협주곡의 스타일은 바이올린 독주가 돋보여야 하고 오케스트라는 그저 뒤에도 바이올린을 도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협주곡은 교향악적인 면이 강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상호작용을 하는 협주곡을 완성합니다.

평론가들은 이미 익숙한 형태에서 벗어난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고 비난과 비평만 쏟아 내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협주곡은 시간이 히면서 다시 재평가되어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불랄만큼 역작으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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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협주곡의 탄생***

베토벤의 교향곡 영웅의 초연이 이루어지던 날 클레멘트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같이 초연이 되었습니다.

그는 클레멘트의 곡이 마음에 들었던지 그날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클레멘트는 베토벤의 생각에 많은 지지와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까지 맡습니다.

베토벤은 이 곡을 클레멘트에게 헌정합니다.

1806년 초연과 함께 아주 부정적인 평이 이어졌지만 38년 후 1844년 런던 필하모닉 공연에서 12살의 요제프 요하임이 이 곡을 연주하면서 혹평은 호평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날의 지휘자는 멘델스존이었습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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