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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티코비치의 '현악 4중주 8번 op.110'은 1960년 7월 완성되었습니다.
이 곡은 당시 공산체제였던 소련 스탈린의 의뢰로 작곡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영국의 폭격으로 인한 참상을 되새기기 위한 음악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현악 4중주 8번의 탄생***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에게 동독과의 합작 영화 ' 5번의 낮과 5번의 밤'을 위한 배경 음악을 지시합니다.
드레스덴 폭격은 1945년 2차 대전 중 미국과 영국에서 출동한 800여 대의 폭격기가 드레스덴 시가를 7차례나 폭격한 가한 사건입니다.
폭격으로 인해 드레스덴을 90%이상 파괴가 되었고 2만 5천 명의 사상자가 난 대참사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지시로 드레스덴을 방문을 했고 15년이 지난 1960년 현재도 도시 곳곳에는 폭격의 흔적이 생생했습니다.
그 참상이 너무 리얼했던지 그의 즉흥적인 영감이 그대로 오선지에 표현되었는데 작곡을 착수하고 단 3일 만에 '현악 4중주 8번'을 탄생시킵니다
전체 5악장 구성이고 악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며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를 생각하며'라는 부제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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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곡이 되다***
이 곡은 표면적인 의도는 드레스덴의 폭격과 희생자의 추모이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는 파시즘에 대한 비판과 그의 자전적인 의미도 숨겨져 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독창성과 자유를 억압했던 소련의 공산당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가족과 안위를 위해 그들이 원하는 작곡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성격이 극도로 소심하고 결벽증도 심했다고 하니 스트레스와 중압감은 다른 사람보다 더했을 듯 합니다.
그런 그의 생각들은 곡의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D, Es, C, H)을 전 악장에 조성에 교묘하게 배치해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소심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작곡할 때 맥주를 12병을 마시고 소변의 양만큼 눈물을 흘리며 썼다고 하죠.
그가 활동을 한 시대는 작곡가로 살아가기에는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1960년은 그에게 더 잔혹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는 극심한 요통을 건강이 악화되었고 통제와 간섭, 박해를 피해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아무도 나를 추모할 곡을 쓰지 않을 테니 내가 직접 써 두는 편이 좋겠어"라는 글을 쓰거나 친구 앞에서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하며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 곡에는 그가 이미 작곡한 교향곡 1, 5, 10번, 피아노 3중주, 첼로 협주곡 1번 ,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 등의 선율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는 다량의 수면제를 샀는데 이를 눈치챈 친구는 쇼스타코비치의 아들에게 감시를 하게 합니다.
결국 수면제는 아들에게 빼앗겨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쇼스타코비치는 15년 후인 1975년 사망했고 그의 장례식에는 현악 4중주 8번이 연주되었습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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