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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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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왈츠곡으로 오스트리아의 국민 음악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어느 음악회를 가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항상 듣게 되는데 오스트리아인들의 자부심이 담긴 상징적인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곡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곡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스트리아 빈에는 꼭 들러야 하는 관광지가 몇 군데 있는데요, 그 중 한 곳이 빈 시립공원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황금 동상입니다.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한 오스트리아가 다른 음악가들을 모두 제치고 요한의 동상을 세운 것은 그가 새로운 음악 장르의 개척자라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왈츠 작곡가로 '왈츠의 왕'이라 불리고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의 길로 가는 것을 무척 반대했다고 합니다.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음악을 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렇게 몰래 공부하다 아버지에게 들켜 심하게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음악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집을 나가면서부터였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9세가 되던 해 그는 자신의 악단을 만들고 빈에서 음악가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가 데뷔하자 뜻하지 않게 아버지와 라이벌 관계가 됩니다.

공교롭게도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데뷔를 한 곳은 그의 아버지가 연주를 자주 하던 둠마이어 카지노였고 이후 아버지는 그곳에서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시기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1860~70년대쯤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이 시기에 작곡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해외 공연도 자주 다니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국제적인 라이징 스타가 되었습니다.

'왈츠의 왕'이라는 별칭도 이때 생겨난 것인데 미국 공연 중 붙여진 이름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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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오스트리아인들은 유독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사랑하고 아끼는데 그 이유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전쟁으로 7주 만에 패하고 맙니다.

독일의 통일을 꿈꾸고 있던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참모인 몰트케의 치밀한 전략은 오스트리아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웠습니다.

전쟁의 실패로 인해 독일의 의장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이 일로 오스트리아는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달래고자 빈의 합창단은 밝고 쾌활한 곡으로 공연을 할 계획을 세우고 그 곡의 작곡가로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의뢰하게 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상징인 도나우강을  노래한 시를 응용해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하게 됩니다.

그는 처음 이 곡을 합창곡으로 완성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좋지는 않았고 이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공연을 앞두고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바꾸게 됩니다.

공연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오케스트라로 대부분 연주되고 있습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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