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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베토벤, 교향곡 제7번 - 대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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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교향곡 5번과 6번을 발표하고 4년 후 1812년 '교향곡 제7번'을 완성해 '대교향곡'이라는 부제를 달아 후원자 프란츠 백작에게 헌정합니다.

지금껏 베토벤의 교향곡의 성격과는 다른 장중함에서 벗어나 밝고 낙전적인 분위기가 특징적입니다.

교향곡은 축제에 간 듯 들떠있고 즐거움이 한껏 물오른 모습이 연상이 되는데 실제 베토벤은 춤곡에서 사용될 만한 선율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교향곡 제7번'은 매력적인 리듬감이 포인트로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은 베토벤이 술에 취해 작곡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집니다.

베토벤은 체코 테플리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7번을 작곡했는데 이 곳은 한 때 불멸의 연인* 논쟁의 마지막 증거와 연관된 곳이기도 합니다.

*불멸의 연인

베토벤 사망 후 제자 안톤 쉰들러가 베토벤의 서랍 속에서 애절한 내용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총 3통의 편지는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여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줄리에타 귀차르타와 테레제 브룬슈빅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중 테레제가 불멸의 연인이라는데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베토벤의 아들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그 증거로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베토벤과 테레제가 글로 나눈 대화에서 아들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유력한 듯하만 지금까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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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은 하나우 전투에 참여한 오스트리아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 웰링턴의 승전과 함께 빈 대학 대강단에서 이루어집니다.

초연은 베토벤도 심혈을 기울였고 관계자와 관현악단 역시 연주에 공을 들였습니다.

당시는 청각이 점점 심각해져오는 터라 악기 소리가 베토벤이 원하는 만큼 되지 않자 리허설 때 짜증을 많이 내었다는 후문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초연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지만 함께 공연한 웰링턴 승전의 인기가 더 높아 7번의 성공이 묻히자 베토벤의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향곡 7번의 2악장의 인기는 폭발적이어서 앵콜 곡으로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테레제 브룬슈빅

***베토벤과 하이든***

하이든은 베토벤보다 한 세대 앞선 작곡가로 무려 100곡의 교향곡을 남겨 가히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닉네임이 어울릴 만합니다.

하이든의 뒤를 이어 베토벤도 불후의 교향곡을 9개 남겼는데 수적으로는 하이든과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교향곡마다 그 성격이 아주 분명합니다.

베토벤 교향곡 1번과 2번은 선배인 하이든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의 한계를 넘어선 도전정신이 돋보이고 3번, 영웅과 5번, 운명은 프랑스혁명과 사회적인 문제 극복을 위한 메시지, 4번은 하이든의 곡이 다시 소환되는 듯한 레트로 풍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6번, 전원은 자연을 찬양하며 8번은 복고스럽지만 베토벤의 야심이 엿보이고 9번, 합창은 교향곡 최초로 사람의 목소리가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걸작입니다.

7번의 경우 낭만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9번, 합창과 같은 신선한 퍼포먼스도 없습니다.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특징이라는 점에서 하이든의 교향곡의 소환, 선대 작곡가에 대한 존경을 동시에 담은 듯 합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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