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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은 교향곡 6번 '비창'이었습니다.
발레곡이 그의 상징이지만 모든 음악 장르를 섭렵하고 명곡들이 많은 러시아의 대작곡가입니다.
수많은 명곡 중 교향곡 '비창'은 그의 유작으로 초연 후 9일 뒤에 의문의 사망을 하게 됩니다.
사망의 원인은 콜레라에 감염되었다는 설, 동성애와 관련해 자살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망을 둘러싼 여러 가지 소문들보다 '비창'은 그가 수년의 노력에 걸쳐 작곡을 했고 곡 전체에서 우울함과 슬픔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그가 죽음을 예견한 듯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교향곡 제6번 '비창'***
죽음을 이야기하는 곡일 것 같지만 '비창'은 인간의 삶과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1악장은 그가 제일 아꼈던 오페라 카르멘의 꽃노래를 응용했는데 왈츠와 화려한 환상곡, 행진곡이 인상적인 악장입니다.
'비창'은 초연을 하기 전부터 관심을 받고 있던 곡이었습니다.
이 곡의 인기비결을 순도 100%의 솔직함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비통함을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직설적인 정공법으로 투명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교향곡의 일반적인 구조라면 빠른 악장으로 시작해 느린 악장, 그리고 다시 빠른 악장으로 되돌아가는 형식이지만 '비창'은 이런 통상적인 상식마저 깨뜨렸습니다.
1, 2악장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로 3악장은 리드미컬한 왈츠 선율로 전환되고 4악장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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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의문의 죽음***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을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당시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공식적인 사인은 콜레라였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었고 사람들은 그가 동성애자란 사실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실제 '멜로디의 천재'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고 이것은 그의 정체성과 관련해 평생 따라다녔던 아킬레스였습니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동성애자였던 위인들은 많았지만 유독 차이코프스키에게만 억압이 심했던 까닭은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 국가였습니다.
규제와 억압이 심했던 러시아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처벌이 엄격했고 차이코프스키조차도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귀족의 아들과 연인관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의 대학동창들은 동성애 사실이 발각될까봐 은밀하게 재판을 열어 차이코프스키에게 음독자살을 강요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콜레라 사망설보다는 음독자살에 더 유력하게 작용합니다.
그 증거로 차이코프스키 박물관 담당자이자 음악학자인 오를로바가 "차이코프스키는 비소 중독에 의한 자살"이라고 발표를 한 적이 있지만 이마저도 증거불충분으로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교향곡 6번 '비창'은 실제 작곡가인 차이코프스키와의 죽음과 이어지면서 더더욱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동영상***
<교향곡 제6번 비창 중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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